[테크놀로지와 사람] 화성과 과학 기술의 상상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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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오래도록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근대 이후, 화성과 외계 생명체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커졌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천문학 분야에서 눈부신 진보가 있었던 것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화성과 특히 인연이 깊은 미디어라면 무선 통신과 라디오를 들 수 있다.

천문학자이자 공상 과학 소설 작가였던 까미유 플라마리옹은 1890년 한 잡지에 투고한 논문에서 무선 통신을 이용해 외계와의 소통을 제안하며 이 아이디어가 "전화, 축음기, 화상 통화, 영화만큼 황당무계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프랑스 천문학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그는 외계인의 존재를 굳게 믿었는데, 특히 무선 미디어야말로 우주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라고 생각했다. "우주에 대한 탐구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라는 그의 말은 무선 통신 장치의 발명에 여념이 없던 기술광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1899년 실험용 전류 수신탑에 수상쩍은 무선 신호가 잡혔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심령주의에 푹 빠져있던 당시의 지식인답게 그는 신호가 화성에서 온 메시지라고 추측했다. 몇 년 뒤 무선 통신 장치를 세상에 내놓은 라디오의 아버지, 마르코니도 전파를 이용한 외계와의 교신 가능성을 언급,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겼다.

20세기 초반, 탐험가였던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 대한 책을 내놓으며 사회적 관심은 더욱 구체화했다. 중세의 천문학 지식과 스스로의 관측 자료를 집대성한 그의 책은, 지구인보다 지능이 높고 수준 높은 문명을 구축한 화성인에 대해 조리 있게 추론했다. 상체가 발달하고 머리가 크며 두 발로 걷는 화성인의 이미지는 이때부터 생겼다.

라디오 방송도, 트랜지스터라디오도 없던 시절, 무선 통신은 외계인과 교신을 간절히 원하던 젊은이들의 장난감이었다. 젊은이들은 통신 장치를 조립해서 만들고, 이 장치를 이용해 멀리 있는 상대와의 교신을 경쟁하는 DX ('Distant' 장거리, 먼 거리를 의미하는 은어) 취미에 몰두했다. 이 취미가 주는 재미의 종착점은, 화성인과의 교신 가능성이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는 전파 망원경으로 외계인과 접촉한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으니, 무선 통신을 통한 외계와의 교신 시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화성과 라디오의 '악연'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38년 미국 CBS라디오는 핼러윈 특집으로 화성인의 지구 침략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 '우주 전쟁' (H.G웰즈, 1898년)을 극화한 라디오 드라마를 방영했다. TV가 대중화하기 전 라디오의 영향력을 증명하듯, 많은 청취자가 화성인의 뉴저지 침공 사실을 믿고 패닉에 빠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소동 직후 이 해프닝에 대해 조사한 심리학자 캔트릴은 "전쟁 발발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화성 침공도 현실감있게 느껴졌다"는 청취자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황당무계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리얼리티가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화성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한 번 고조되고 있다. 지구인의 탐사 계획이 화성의 생태계를 오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오고, 화성에 '정착촌'을 만든다는 구상도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화성 플랜이 실현되는 것은 짧아야 십수 년, 길면 수십 년 이후의 일이 될 터이다. 계획들이 원안대로 실현될 지 여부도 미지수이지만,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2015년이 수십 년 뒤의 후대에게 어떻게 비추어질 지도 궁금하다. 실체는 베일에 싸여있을 지언정, 상상력과 호기심의 근원으로서 인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온 화성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