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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서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향연'에 대한 단상 2017/12/12
  2. 손빈(孫臏) 2017/09/07
최근에(야 읽었다는 게 민망하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향연'은 800여쪽의 무거운 책이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 10부,'향연'의 전문 번역 500여쪽에 이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생애와 사회적 배경, 사상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200 여쪽이 붙어있는 구성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어 플라톤이 글로 엮은 앞부분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명문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뒷 부분의 해제의 수준도 상당히 높다. 그리스 철학에 대한 사상적 이해도 탁월하고 글솜씨도 유려해, 플라톤의 글에 지지 않을 정도이다. 문장도 번역문임에도 보기드불게 읽는 맛이 있다. 최근 읽으면서 멀미가 날 정도로 악문장인 번역서를 많이 접한 터라, 역자의 막힌없는 글솜씨에 감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번역서임에도, 원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누가 쓴 (혹은 이 역시 번역한) 책을 한국말로 옮겼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없다. 심지어는 '역자의 말'도 없다. 번역서의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다. 역자는 왕학수이다. 짧은 역자 약력에는 일본 조치대학교에서 유학했다고적혀 있으니, 아마 일본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중역했으리라. '국가' 본문 중에는 음식에 맛을 더하는 소스를 '간장'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 일본어 번역본의 '의역'을 한국어로 '직역'한 결과로 보인다. 수준높은 해제를 쓴 (아마도)일본의 학자가 누구일까. 그리스 철학에 조예가 깊은 그의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지만,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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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빈(孫臏)
from 잡담/ Miscellaneous 2017/09/07 12:22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를 <손자병법>은,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무(孫武)가 쓴 병법서이다. 혹은 손무가 쓰기 시작한 병법서를 손자인 손빈(孫臏)이 완성시켰다는 일설도 있다. 80년대에 읽은 <손자병법>은 후자의 일설을 전제로 쓴 책이었는데, 책은 예전에 내 손을 떠났지만 분명치 않은 기억 속에는 굴곡이 많았던 손빈의 인생에 대한 기술이 비교적 충실했던 인상이 있다.

손빈의 원래 이름은 "孫賓"이라고 한다. 그는 뛰어난 머리와 출중한 능력 때문에 동료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다리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극형을 당한다. 억울하게 앉은뱅이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인데, 어찌보면 덕분에 병법서를 집필하는 큰 일을 해냈다. 다리를 잘리는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이름 '賓'에다가 몸을 의미하는 육변(月=肉)을 붙인 '臏'(무릎을 뜻함)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다리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극형을 '빈형(臏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쩌면 이 형벌의 이름이 손빈 때문에 붙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리를 잘리기 전의 이름이 우연히도 孫賓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짜맞추어진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름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다리로 멀쩡히 걸을 수 있던 孫賓에서 앉은뱅이인지라 머리를 쓰며 살아가야 하는 孫臏이 된 것이니, 개명은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내면적 계기였을 것이다. 이름을 바꾼 것이 정말 손빈의 결단이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를 짜맞춘 총명한 호사가의 재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후세에게 좋은 교훈이 될 듯해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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